
| 기간 | 2014.08.12 ~ 20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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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우양미술관 2층 3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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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작가 | 곽인식, 김환기, 남관, 류경채, 박서보, 유영국, 윤명로, 윤형근, 이성자,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인두, 하종현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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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 우양미술관 |
전시개요
‘한국적 추상’의 탄생-1970년대 한국추상미술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1. 지난 세기 인류가 일궈낸 가장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추상미술’로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세기 한국인이 이뤄낸 가장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다 복잡해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도 여기서 ‘한국적 추상화’를 빼놓지는 않을 것이다.
서양의 추상화는 1930년대부터 시차를 갖고 한국 화가들에 의해 띄엄띄엄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서구 추상화는 현대미술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감성의 분출구로 확고히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낸 1950년대 앵포르멜을 뒤이어 한국의 추상화 계보를 잇는 1970년대의 ‘단색화’ 또는 모노크롬 미술은 분명 ‘한국적 추상’이라고 불릴 만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았다. 단색화는 문자 그대로 흰색이나 갈색, 검정색 같은 모노톤의 단색으로 거대한 화면을 채워버린다. 무엇보다도 단색화는 그 당당한 화면과 재료 선택에서 보여준 대범함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 미학에 근거한 이론적 논리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국내의 추상미술과 뚜렷이 차별된다.
이번 전시는 추상화의 한국적 수용과정과 계기적 발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화가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동경유학생으로 순수 조형과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실험한 김환기, 유영국, 유경채부터 한국전쟁 이후 부정형의 추상미술을 도발적으로 이끌었던 박서보, 하인두, 곧이어 60년대 추상미술을 이끌었던 윤명로, 정창섭, 정상화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쟁 직후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추상 미술을 전개했던 곽인식, 남관, 이성자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필자가 앞서 ‘한국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1970년대 단색화 운동에 새롭게 가세하는 이우환, 윤형근과 하종현의 작품도 있다.
이렇게 이번 우양미술관의 추상미술 전시는 한국의 추상미술의 주역을 한 무대 위에 올리고 있는데 그 시점은 대략적으로 1970년대를 중심으로 한다. 따라서 이 전시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단색화에 모아진다. 물론 이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단색화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단색화를 기준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성향과 개성을 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단색화는 확실한 계기를 갖고 역사에 등장한다. 1975년 5월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개의 흰색>전이 바로 그 매듭인데, 이 전시는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나던 한국의 추상미술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지난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대 국제전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평가 받은 바 있다.
전시도록에는 한국과 일본의 평론가가 쓴 글이 수록되었다. 일본 측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 (中原佑介)의 글은 이 전시가 일찍부터 한국 미술계 현장을 답사한 결과로 기획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1973년 봄 처음을 서울을 방문하고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때 나는 중간색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화면이 지극히 델리케이트하게 마무리져있는 회화가 눈에 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색이 한국 미술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자상치가 않다. 그러나 이들 화가의 작품을 볼 때 백색이 화면의 색채로서의 한 요소가 아니라 회화를 성립시키는 어떤 근원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백색은 도달점으로서의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우주적 비전의 틀 그 자체이다.
한편, 홍익대 교수로 있던 평론가 이일이 쓴 전시 서문 ‘백색은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당시 한국미술계를 지배하던 백색 톤의 단색화의 의미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일은 백색이 ‘백의민족’, ‘이조백자’처럼 한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전통적 색채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는 단청의 예처럼 과학적 색채 구성이 엄연히 존재했음을 주지시켰다. 따라서 당시 한국 내에서 백색의 유행은 백색이 가진 민족적 상징성에 머물지 않고 보다 심오한 동양적 자연관 위에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우리에게 백색은 단순한 하나의 빛깔 이상의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빛깔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인 것이다. 백색이기 이전에 ‘백’이라고 하는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백색을 하나의 빛깔이기 때문에 이전에 자연의 <에스프리>- ‘생명의 입김’이라고 하는 그 본래의 뜻에서의 에스프리로 받아들여 온지도 모른다.
이번 우양미술관 전시의 출품작 중에서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의 1970년대 작품은 당시 국내를 휩쓸던 모노톤의 추상화의 예를 잘 보여준다. 한편 이우환은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미술계의 흐름을 해외에 소개하면서 단색화의 흐름을 이끄는데 깊이 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우환은 이 시기 작품에서 필선을 흰색 화면 위에 번지거나 반복적으로 찍어내면서 한국의 단색화와 유사한 조형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우환은 1990년 [공간]지에 쓴 글에서 “캔버스와 붓 사이와 마찬가지로 붓과 손 사이에는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 실린 그의 그림 속에 찍히거나 번진 선과 점이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의 재현이라고 본다면 보다 흥미로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김환기, 곽인식, 유경채, 이성자, 정상화의 1960년대 작품은 한국의 1970년대 추상이 어떠한 시각적 경험을 축적하고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출품된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의 추상미술이 형태의 재해석에서 벗어나 단색조의 화면으로 점진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단색화는 동시대 미국의 미니멀리즘과 비교되면서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미니멀리즘이 형태에 대한 부정이나 사실성에 대한 극복을 전제로 화면 속에 비판적 논리 구조를 담아내려 했다.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평론가 이일의 주장처럼 색채를 정신성의 표출로 보고 그것의 재현 과정을 자기 수양의 정서적 기제로 삼고 있다. 나카하라 유스케의 말처럼 형태를 배제하거나 그것을 극한으로 끌고나가는 서구의 추상과는 달리 이 시기 한국적 추상은 화면과 색채를 ‘우주적 비전의 틀’처럼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를 이일은 ‘생명의 입김’이라고 불렀고, 이우환은 그것을 드러내는 캔버스와 붓, 그리고 신체 간의 간격을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라고 말하였다.
3. 이번 전시에서 윤명로의 <얼레짓>(330×150cm, 1984)이나 곽인식의 <무제>(412×190cm), 정창섭의 <심문>(280×180cm, 1984) 같은 작품 앞에 잠시 서본다면, 관객들은 한국 현대 미술의 색다른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지극히 단순한 행위를 통해 그려진 무채색의 절제된 색채를 3, 4 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화포 위에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색채와 그것의 재현 과정에 담겨 있는 간결성에서 이 전 시기의 한국미술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신감이 느껴진다.
필자는 한국 현대 미술의 기원은 냉철하게 따져볼 때 1970년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술은 시대적 상황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부터 서구 실험미술은 꾸준히 국내에서 실험되었지만 근대화가 미진한 상태에서 서구 실험미술의 수용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한국의 경제 상황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도시화와 산업화에 기초한 근대화가 실질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던 시기였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미술에서도 전달되었다고 본다.
1970년대의 단색화는 분명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단색화가 당시 경제적 부흥과 극렬하게 대비되는 암울한 정치현실에 대해서 회피하였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모더니즘 조형언어에 대한 추격을 멈추고 도리어 그것을 이용해 한국의 근대적 정서를 잡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단색화를 비롯한 당시 한국 추상 미술계의 성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을 접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한국 미술은 이전 시기의 미술과 또 다시 대비된다.
20세기 근대의 역사를 식민지 상황 하에서 맞이한 한국의 현대작가들에게 전통이란 극복의 대상이거나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의 전통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보다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게 된다. 이는 어느 정도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민족주의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부흥을 기초로 한 자신감과 보다 깊게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 중에서 유영국의 <산> 시리즈, 류경채의 <초파일>, <독백>, 남관과 하인두의 과감한 색면구성에서 전통적 오방색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단색화와 함께 한국의 미적 전통에 대한 시선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전통에 대한 긍정적 접근은 질료의 선택에서 또다시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화선지, 마, 먹, 등의 적극적인 사용이 바로 그 예가 된다.
4. 추상화는 누가 뭐래도 20세기의 대표적 미술이다. 그 이전의 모든 미술을 낡게 만들어 버렸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번민을 담아내는 전위적인 시각적 도구로 영웅화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추상화는 낯선 서구 현대문명처럼 어렵게만 다가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구 추상화에 대한 수용 방식은 이 글에서 살펴 본 것처럼 1970년대를 전후하여 크게 변화하게 된다. 이때부터 추상은 더 이상 서툴고 낯선 조형언어가 아니다. 이때부터 색채를 비롯한 점선면의 기본 조형은 한국 작가들에게 자아성찰과 세계관의 도구로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한국적 추상’의 전후 맥락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양정무 (미술이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전시개요
‘한국적 추상’의 탄생-1970년대 한국추상미술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1. 지난 세기 인류가 일궈낸 가장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추상미술’로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세기 한국인이 이뤄낸 가장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다 복잡해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도 여기서 ‘한국적 추상화’를 빼놓지는 않을 것이다.
서양의 추상화는 1930년대부터 시차를 갖고 한국 화가들에 의해 띄엄띄엄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서구 추상화는 현대미술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감성의 분출구로 확고히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낸 1950년대 앵포르멜을 뒤이어 한국의 추상화 계보를 잇는 1970년대의 ‘단색화’ 또는 모노크롬 미술은 분명 ‘한국적 추상’이라고 불릴 만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았다. 단색화는 문자 그대로 흰색이나 갈색, 검정색 같은 모노톤의 단색으로 거대한 화면을 채워버린다. 무엇보다도 단색화는 그 당당한 화면과 재료 선택에서 보여준 대범함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 미학에 근거한 이론적 논리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국내의 추상미술과 뚜렷이 차별된다.
이번 전시는 추상화의 한국적 수용과정과 계기적 발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화가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동경유학생으로 순수 조형과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실험한 김환기, 유영국, 유경채부터 한국전쟁 이후 부정형의 추상미술을 도발적으로 이끌었던 박서보, 하인두, 곧이어 60년대 추상미술을 이끌었던 윤명로, 정창섭, 정상화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쟁 직후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추상 미술을 전개했던 곽인식, 남관, 이성자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필자가 앞서 ‘한국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1970년대 단색화 운동에 새롭게 가세하는 이우환, 윤형근과 하종현의 작품도 있다.
이렇게 이번 우양미술관의 추상미술 전시는 한국의 추상미술의 주역을 한 무대 위에 올리고 있는데 그 시점은 대략적으로 1970년대를 중심으로 한다. 따라서 이 전시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단색화에 모아진다. 물론 이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단색화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단색화를 기준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성향과 개성을 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단색화는 확실한 계기를 갖고 역사에 등장한다. 1975년 5월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개의 흰색>전이 바로 그 매듭인데, 이 전시는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나던 한국의 추상미술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지난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대 국제전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평가 받은 바 있다.
전시도록에는 한국과 일본의 평론가가 쓴 글이 수록되었다. 일본 측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 (中原佑介)의 글은 이 전시가 일찍부터 한국 미술계 현장을 답사한 결과로 기획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1973년 봄 처음을 서울을 방문하고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때 나는 중간색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화면이 지극히 델리케이트하게 마무리져있는 회화가 눈에 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색이 한국 미술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자상치가 않다. 그러나 이들 화가의 작품을 볼 때 백색이 화면의 색채로서의 한 요소가 아니라 회화를 성립시키는 어떤 근원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백색은 도달점으로서의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우주적 비전의 틀 그 자체이다.
한편, 홍익대 교수로 있던 평론가 이일이 쓴 전시 서문 ‘백색은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당시 한국미술계를 지배하던 백색 톤의 단색화의 의미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일은 백색이 ‘백의민족’, ‘이조백자’처럼 한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전통적 색채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는 단청의 예처럼 과학적 색채 구성이 엄연히 존재했음을 주지시켰다. 따라서 당시 한국 내에서 백색의 유행은 백색이 가진 민족적 상징성에 머물지 않고 보다 심오한 동양적 자연관 위에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우리에게 백색은 단순한 하나의 빛깔 이상의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빛깔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인 것이다. 백색이기 이전에 ‘백’이라고 하는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백색을 하나의 빛깔이기 때문에 이전에 자연의 <에스프리>- ‘생명의 입김’이라고 하는 그 본래의 뜻에서의 에스프리로 받아들여 온지도 모른다.
이번 우양미술관 전시의 출품작 중에서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의 1970년대 작품은 당시 국내를 휩쓸던 모노톤의 추상화의 예를 잘 보여준다. 한편 이우환은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미술계의 흐름을 해외에 소개하면서 단색화의 흐름을 이끄는데 깊이 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우환은 이 시기 작품에서 필선을 흰색 화면 위에 번지거나 반복적으로 찍어내면서 한국의 단색화와 유사한 조형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우환은 1990년 [공간]지에 쓴 글에서 “캔버스와 붓 사이와 마찬가지로 붓과 손 사이에는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 실린 그의 그림 속에 찍히거나 번진 선과 점이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의 재현이라고 본다면 보다 흥미로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김환기, 곽인식, 유경채, 이성자, 정상화의 1960년대 작품은 한국의 1970년대 추상이 어떠한 시각적 경험을 축적하고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출품된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의 추상미술이 형태의 재해석에서 벗어나 단색조의 화면으로 점진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단색화는 동시대 미국의 미니멀리즘과 비교되면서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미니멀리즘이 형태에 대한 부정이나 사실성에 대한 극복을 전제로 화면 속에 비판적 논리 구조를 담아내려 했다.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평론가 이일의 주장처럼 색채를 정신성의 표출로 보고 그것의 재현 과정을 자기 수양의 정서적 기제로 삼고 있다. 나카하라 유스케의 말처럼 형태를 배제하거나 그것을 극한으로 끌고나가는 서구의 추상과는 달리 이 시기 한국적 추상은 화면과 색채를 ‘우주적 비전의 틀’처럼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를 이일은 ‘생명의 입김’이라고 불렀고, 이우환은 그것을 드러내는 캔버스와 붓, 그리고 신체 간의 간격을 ‘별과 별 사이만한 거리’라고 말하였다.
3. 이번 전시에서 윤명로의 <얼레짓>(330×150cm, 1984)이나 곽인식의 <무제>(412×190cm), 정창섭의 <심문>(280×180cm, 1984) 같은 작품 앞에 잠시 서본다면, 관객들은 한국 현대 미술의 색다른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지극히 단순한 행위를 통해 그려진 무채색의 절제된 색채를 3, 4 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화포 위에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색채와 그것의 재현 과정에 담겨 있는 간결성에서 이 전 시기의 한국미술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신감이 느껴진다.
필자는 한국 현대 미술의 기원은 냉철하게 따져볼 때 1970년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술은 시대적 상황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부터 서구 실험미술은 꾸준히 국내에서 실험되었지만 근대화가 미진한 상태에서 서구 실험미술의 수용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한국의 경제 상황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도시화와 산업화에 기초한 근대화가 실질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던 시기였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미술에서도 전달되었다고 본다.
1970년대의 단색화는 분명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단색화가 당시 경제적 부흥과 극렬하게 대비되는 암울한 정치현실에 대해서 회피하였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모더니즘 조형언어에 대한 추격을 멈추고 도리어 그것을 이용해 한국의 근대적 정서를 잡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단색화를 비롯한 당시 한국 추상 미술계의 성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을 접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한국 미술은 이전 시기의 미술과 또 다시 대비된다.
20세기 근대의 역사를 식민지 상황 하에서 맞이한 한국의 현대작가들에게 전통이란 극복의 대상이거나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의 전통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보다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게 된다. 이는 어느 정도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민족주의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부흥을 기초로 한 자신감과 보다 깊게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 중에서 유영국의 <산> 시리즈, 류경채의 <초파일>, <독백>, 남관과 하인두의 과감한 색면구성에서 전통적 오방색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단색화와 함께 한국의 미적 전통에 대한 시선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전통에 대한 긍정적 접근은 질료의 선택에서 또다시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화선지, 마, 먹, 등의 적극적인 사용이 바로 그 예가 된다.
4. 추상화는 누가 뭐래도 20세기의 대표적 미술이다. 그 이전의 모든 미술을 낡게 만들어 버렸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번민을 담아내는 전위적인 시각적 도구로 영웅화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추상화는 낯선 서구 현대문명처럼 어렵게만 다가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구 추상화에 대한 수용 방식은 이 글에서 살펴 본 것처럼 1970년대를 전후하여 크게 변화하게 된다. 이때부터 추상은 더 이상 서툴고 낯선 조형언어가 아니다. 이때부터 색채를 비롯한 점선면의 기본 조형은 한국 작가들에게 자아성찰과 세계관의 도구로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한국적 추상’의 전후 맥락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양정무 (미술이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