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 미술관(경주)에서는 7월 17일부터 약 두달간 양주혜의 새로운 작업을 전시한다. 프로젝트적인 성격이 강한 설치작업을 주로 해왔던 양주혜는 이번에도 역시 전시장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오브제들이나 공사장의 가림막 위에 점을 찍어나가는 양주혜의 작업방식은 이번 아트선재 미술관에 설치된 <흔적지우기>라는 작업에서도 연장되고 있으며, 그의 작업에 등장해온 기존의 색점들은 텍스트로서의 반야 심경을 지워간다. 반야심경은 부처님 말씀을 적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바羅蜜多心經)}을 줄여서 부르는 말 이다. 원래 이름은 {프라즈냐 파아라미타아 흐릿다야 수우트라 (Prajna-paramita-hrydaya-sutra)}로, "절대 완전의 지혜로 저 언덕에 도달한 마음의 경"이 란 의미이다.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경주가 불교를 국교로 하였던 신라의 도읍지라는 점에서 반야심경의 텍스트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 의도를 추측해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 양주혜가 반야심경에서 발견한 것은 심오한 불교경전으로서의 "내용"이 아니라 5개의 글자가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이 53줄의 문장이 다시 원형으로 배열된 "시각적 형태" 그 자체였다. 작가가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상반된 두 개념은 반야심경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된 상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보여주기와 이름붙이기", "그리기와 말하기", "재현하기와 의미하기", "바라보기와 읽기" 등 대립된 문제들에 대한 재고를 유도해내고 있다. 반야심경이라는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글자들 위에 색점을 찍어나가는 행위는 흔적을 남기는 작업인 동시에 흔적을 지워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전시장 벽면을 따라 일렬로 설치된 바둑돌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는 행위는 바둑판을 채워가는 행위인 동시에 바둑판의 흔적을 지워가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작업은 모두 흔적을 지워나가 "텅빔"에 이르고 다시 그 "텅빔"을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양주혜의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은 그의 의도대로 色과 空이 다르지 아니하고 空 역시 色과 다르지 아니하다는 가르침을 되새겨 볼 수 이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해준다.
전시개요
아트선재 미술관(경주)에서는 7월 17일부터 약 두달간 양주혜의 새로운 작업을 전시한다. 프로젝트적인 성격이 강한 설치작업을 주로 해왔던 양주혜는 이번에도 역시 전시장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오브제들이나 공사장의 가림막 위에 점을 찍어나가는 양주혜의 작업방식은 이번 아트선재 미술관에 설치된 <흔적지우기>라는 작업에서도 연장되고 있으며, 그의 작업에 등장해온 기존의 색점들은 텍스트로서의 반야 심경을 지워간다. 반야심경은 부처님 말씀을 적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바羅蜜多心經)}을 줄여서 부르는 말 이다. 원래 이름은 {프라즈냐 파아라미타아 흐릿다야 수우트라 (Prajna-paramita-hrydaya-sutra)}로, "절대 완전의 지혜로 저 언덕에 도달한 마음의 경"이 란 의미이다.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경주가 불교를 국교로 하였던 신라의 도읍지라는 점에서 반야심경의 텍스트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 의도를 추측해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 양주혜가 반야심경에서 발견한 것은 심오한 불교경전으로서의 "내용"이 아니라 5개의 글자가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이 53줄의 문장이 다시 원형으로 배열된 "시각적 형태" 그 자체였다. 작가가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상반된 두 개념은 반야심경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된 상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보여주기와 이름붙이기", "그리기와 말하기", "재현하기와 의미하기", "바라보기와 읽기" 등 대립된 문제들에 대한 재고를 유도해내고 있다. 반야심경이라는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글자들 위에 색점을 찍어나가는 행위는 흔적을 남기는 작업인 동시에 흔적을 지워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전시장 벽면을 따라 일렬로 설치된 바둑돌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는 행위는 바둑판을 채워가는 행위인 동시에 바둑판의 흔적을 지워가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작업은 모두 흔적을 지워나가 "텅빔"에 이르고 다시 그 "텅빔"을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양주혜의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은 그의 의도대로 色과 空이 다르지 아니하고 空 역시 色과 다르지 아니하다는 가르침을 되새겨 볼 수 이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해준다.